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5월 근황)
처음으로 피크민 데코를 완성했다. 내 생활반경에는 볼 때마다 버섯 자리가 없었지만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가 버섯전투 불러준 게 큰 도움이 됐다. 작년 11월에 이 게임을 시작했는데 거진 5개월이 지나서야 데코 세트 하나를 완성했다. 영영 못 채울 것 같던 일람이 하나씩 채워지고 있다.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길도 걷다보면 도착하려나. 중요한 건 걷는 거다. 살민 살아지고, 어떻게든 된다(なんとかなる). 근데 걷지를 않아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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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끼리 파주에 있는 마장호수에 다녀왔다. 이런데는 차가 없으면 다녀오기 힘들다. 운전하면서 이곳저곳 슝슝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은 늘 하지만 운전은 아직 무섭다.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
롤 일반게임은 무섭다며 봇전만 하던 아는 누나가 생각난다. 일겜이 기본값인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지금 보니 나도 별반 다르지 않잖아 ? 무엇이든 잘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 그 알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처음엔 초보일 수 밖에 없는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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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개발자 그리고 엔지니어링 리더” 세미나에 다녀왔다. 연사분들이 모두 CTO라 그런지, 인사이트가 정말 풍부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 확인하기 !
2025.05.15 - [thoughts] - 북토크에서 든 생각들
<AI 시대의 개발자 그리고 엔지니어링 리더> 북토크에서 든 생각들
"윌 라슨의 엔지니어링 리더십" 출간 기념 북토크에 다녀왔다. 책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토크 주제가 흥미로워 보였다. AI 시대의 개발자라니,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준비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zionhan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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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로 국립중앙도서관 청년 디지털 봉사단에 활동했다. 봉사단 활동은 디지털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 하나에 참여해서 교육생 실습 보조를 하는 건데, 봉사단을 프로그램 단위로 모집해서 그런지 활동 기간이 짧아서 아쉬웠다. 개선 의견에도 썼지만 기수제로 모집할거면 활동기간을 늘리고 봉사 범위도 넓히는 게 좋지 않을까. 워크샵 때 보면 봉사단원분들 스펙이 다들 대단하신데 그 역량이 다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도 활동 자체는 보람차고 의미있었다. 나에게 당연한 게 누군가에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고, 그만큼 내가 아는 걸 가지고 최대한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게 노력했던 것 같다. 내가 맡은 교육생 한 분은 70대셨는데 아직도 회사에 다니시는 현역이시고 항상 맨 앞에 앉으셔서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정말 멋있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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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졸업하지 않은 친구들의 졸업전시회를 축하하러 포항에 다녀왔다. 눈빛만 봐도 얼마나 고생했는지 느껴졌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목소리 아끼라고 설명을 사양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나누는 게 전부였다. 꽃을 선물할까 고민도 했지만, 선물할 사람은 많은데 돈이 없었다.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고 싶지 않아 결국 빈손으로 갔는데, “꽃은 어디 있냐”는 핀잔에 괜히 미안해졌다.
5개월 만에 다시 찾은 포항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뉴턴홀, 연구실, 동방, 양덕, 하나로마트… 익숙한 장소들을 지나며 옛날 생각이 났고, 아직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기분에 괜히 울적해졌다. 진격의 거인 애니에서 엄마가 거인에게 잡아먹히는 걸 지켜봐야 했던 에렌이 몇 년 뒤 한네스가 같은 방식으로 죽는 걸 보며 절규했던 장면처럼, 나 역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아르민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소중한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무엇을 버렸나? 또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 이것도 저것도 잃기 싫은 마음에 변화를 계속 주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건 어쩌면 나 자신이 변화 대신 순응을 택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래의 삶의 방식으로 지금껏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내려놓자. 내려놓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