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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인연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서울에 오면 한 번 보자고 연락이 왔다.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함께했던 추억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졸업한 지 5년이 넘었으니 다소 갑작스러운 연락이 당황스러웠지만 먼저 연락해준 것이 고맙기도 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었다. 어떻게 서로를 알게 되었는지 더 궁금해졌다. 친구는 2학년 때 일본어 수업을 같이 들었다고 한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누군가는 간직하고 있었다. 관계에 대한 마음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 그 차이를 느꼈을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의 연락이 어색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면서 만남을 복기해보니, 아마도 인연을 대하는 태도가 서로 달랐기 때문인 것 같다. 나에게 인연이란 "이어지는 것"이다. 우연이 쌓여 필연을 만든다고 믿기에, 관계에 있어서 유연하지만 수동적이다. 반면, 친구에게 인연이란 "잇는 것"이었다. 우연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필연을 만들고, 그 필연 속에서 인연을 맺는다. 관계에 대해 더 주도적이지만 그만큼 상대에게 상처받기 쉬운 면도 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던 사람이 한두 명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맞지 않으면 인연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했다. 그래서 친구처럼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필연을 만들어 가는 태도가 부러웠다. 그 용기가 나에게 반만이라도 있었더라면...
 

인연을 뜻하는 미츠하의 머리끈.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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