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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회화과 졸업 전시를 관람하면서 생각한 것들

오늘은 고등학교 친구의 회화과 졸업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대전에 다녀왔다. 친구와는 무려 5년 만에 보는건데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한 가지 친구가 나에 대해 낯설어 했던 것은 내 긴 머리였다. 하긴 마지막 만남이 내가 군대 휴가 중이던 때였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전시장의 그림들은 대부분 100호 이내 크기였는데, 예상보다 커서 관람하면서 계속 "이걸 어떻게 그렸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경이로움과 궁금증이 반반 섞인 감탄의 연속이었다. 미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 기법 같은 세부적인 내용은 친구에게 물어보며 관람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그림 한 점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담겨 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떠오르는 심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캔버스 위에 표현한다는 게 정말 대단하고 멋있어 보였다.

 

나는 그림을 이해할 때 주로 제목을 참고하는 편이다. 제목이 직관적으로 다가오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그 나름대로 그림 속에서 메시지를 파악하려는 재미가 있다. 물론 작가에게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그런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이해가 훨씬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오늘 전시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그림 몇 점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추억>이라는 작품이었다. 마침 전시장에 작가님이 계셔서 관련해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작가님은 사람들의 공감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캔버스 곳곳에 익숙한 만화 캐릭터들과 자신이 창작한 캐릭터를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림 속에서 자신이 아는 캐릭터를 찾아내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의도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림을 감상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고자 했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김우림 작가의 <추억>.

 

다음은 <안전지대>와 <돌파구>라는 작품이다. 두 그림을 보면 <안전지대>는 내부로 수렴하는 형태를, <돌파구>는 외부로 발산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대비되는 두 그림의 시각적 특징과는 달리, 제목에서 안전지대와 돌파구라는 관계를 설정한 점이 흥미로웠다. 일반적으로 안전지대는 심리적으로 편안함과 안정을 느끼는 공간을, 돌파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안전지대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편안함보다는 오히려 불편하고 벗어나고 싶은 공간으로 느껴졌던 걸까? 아니면, <돌파구>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차곡차곡 비축하는 공간이었던 걸까? 이 작품은 여러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상상의 여지를 즐길 수 있었다.

 

최여은 작가의 <안전지대>와 <돌파구>.

 

마지막으로 이유정 작가의 <파란_빛>과 <파란_어둠>을 소개할까 한다. 캔버스 옆에 아래와 같은 코멘트가 있었다.

주변에서 지붕과 벽을 빼곡하게 덮은 덩굴들을 봤다. 당시 고민의 갈림길에 서 있던 나에게 덩굴들이 얽히며 빛을 향해 성장하는 모습이 마치 나와 같이 느껴져서 인상 깊게 다가왔다. 고민 끝에 난 덩굴들의 선과 특유의 꼬임을 나만의 패턴으로 표현했고,
성장하는 동굴, 즉 패턴에 나를 투영해 생명과 성장의 의미를 담았다.

나의 패턴을 보면 자연이지만 인위적이고, 회화이지만 디자인적이다. 선 또한 곡선과 직선의 애매한 경계에 있는 내 패턴을 통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자기주도적인 내면세계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래도 스트레스고 저래도 스트레스야'

지금의 패턴이 되기까지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 중첩된 고민들은 강박처럼 나를 틀 안에 가뒀고,
강박은 다시 패턴으로 표현됐다.
덩굴이 무리를 이루며 퍼져가듯이 패턴이 잠식해간다. 머릿속을 채우는 부정적인 생각들처럼 얽히고 얽혀서 빛을 가려버리는 덩굴들이 한때는 장애물이었다.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빛을 향해 나아가려 발버둥치고 있던 것은 아닐까.
마치 마중물처럼 부어도 끝나지 않는 부정이 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어떻게 해도 결론이 나지 않아 생각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이것이 나의 에포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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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波瀾(파란; 어려움이나 시련) 이었던 그들이 나의 인생의 波瀾(파란; 변화) 가 되길 바라며.

작가는 고유의 선과 꼬임을 만들어내는 덩굴에 자신을 투영했다. 덩굴이 빛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서 생명과 성장을 느끼면서도, 덩굴은 역설적으로 작가에게 고민과 강박으로 불러일으키는 장애물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내면에서 얽히고설킨 부정적 생각들과 씨름했고, 그 혼란은 자연스럽게 패턴으로 표현되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작가의 패턴은 자연스럽지만 인위적이고, 회화적이면서도 디자인적이다. 틀에 갇히지 않는 이 패턴은 그 자체로 작가의 내면세계를 반영한다. 한때 자신의 길을 막았던 덩굴을 인생의 변화를 이끄는 파란으로 승화시키며 그 과정을 예술적으로 담아냈다.

 

마치 덩굴이 자라나는 것처럼, 자신만의 길에는 정해진 기준이 없다.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은 바로 자신이며, 그 과정에서 겪은 기쁨과 슬픔 모두 나만의 패턴이 된다. 밝은 모습의 나도, 어두운 모습의 나도 모두 나라는 것. 내면의 부정을 담담히 담아낸 작가의 패턴은 내 안의 어둠과 마주할 용기를 준다.

 

이유정 작가의 <파란_빛>과 <파란_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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