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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그런 스터디로 괜찮은가

대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나는 교내 전산 동아리 중 하나인 “슬기짜기”에 가입해서 활동했는데, 신입 부원들은 팀을 구성해서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해야 했다. 팀원들과 프로젝트 주제에 대해 얘기하면서 동아리 웹사이트 이야기가 나왔다. 명색이 전산 동아리인데 공식 웹사이트 하나 없는 게 말이 되냐고 말이다. 다른 전산 동아리는 자체 사이트로 리쿠르팅을 홍보하고 있던 터라 더 비교가 됐다. 우리도 만들어보자. 그렇게 동아리 홍보 웹사이트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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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은 5명이었다. 나, 편입생 1명, 2학년 1명, 1학년 2명 … 모두 열정은 있었지만 나를 포함해 모두 웹개발 지식이 전무했다. 그나마 3학년인 내가 학교에서 들은 지식으로 이들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지만 어쩌겠는가,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당장 깃허브를 파고, 노션 페이지를 만들어 관련 내용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개발할지는 정했으니, 어떻게 개발할지를 정할 차례였다. 우리들의 수준과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할 때, 최초 기획안을 비우고 또 비우고 나서 정적 웹페이지로 굳혀졌다. 동아리를 소개하고, 리쿠르팅 과정을 안내하는 용도는 정적 페이지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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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르는 게 많았다. HTML과 CSS를 다룰 줄도 몰랐고, Git을 통해 협업하는 방법도 몰랐다. 우리는 학기 중에 스터디를 시작했다. 이들보다 아주 조금 더 아는 내가 스터디를 주도했다. 크게 마크업을 다루는 파트와 깃을 다루는 파트로 나누었다. 이 두 가지만 알면 협업을 통해 정적 웹페이지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본격적으로 스터디를 시작하기 전 웹사이트를 직접 뜯어보면서 각 요소가 어떻게 보이는지 직관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그래서 첫 시간에는 웹사이트를 하나 정하고 개발자 도구를 켜서 사이트의 HTML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카카오 영입 페이지가 정말 단순하면서 시맨틱(semantic)하게 구조가 잘 갖춰져 있어 레퍼런스로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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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시간에서는 Git에 대해서 공부했다. 내가 공부를 해오고 이를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내가 강의력이 좋지 못하다 보니 설명하는데 스터디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래서 실습을 별로 하지 못했다. 내가 헤매니 팀원들도 헤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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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스터디로 괜찮은가?

 

내가 진행하고 있는 스터디 방식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실습이 부족했다는 피드백도 받았다. 그래, 실습 위주로 해보자. 지식을 습득하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실습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은 다 같이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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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HTML과 CSS세션은 실습 위주로 구성했다. 카카오 영입 페이지의 헤더 일부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HTML만 작성하는 단계와 CSS만 작성하는 단계로 나누었다. 깃허브를 통해(Git 사용에도 익숙해지길 바랐다) 스켈레톤 코드를 주고 이를 채우도록 했다. 이 방식은 2학년 때 자료구조 수업 과제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수업의 코딩 과제는 항상 스켈레톤 코드를 완성하는 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부담을 줄이고 목표가 명확해지는 장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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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과제를 해오고 스터디 시간에는 각자 어떻게 과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방적으로 설명을 듣고 따라 하는 시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들로 스터디가 더욱 풍성해졌다. 과제를 다 못해도 괜찮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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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생각을 나눌 때 우리는 성장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다른 가능성을 수용하는 것. 이런 태도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너무 듣기만 하지도, 너무 말하기만 하지도 않기를. 그 균형의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