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개발자 그리고 엔지니어링 리더> 북토크에서 든 생각들 "윌 라슨의 엔지니어링 리더십" 출간 기념 북토크에 다녀왔다. 책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토크 주제가 흥미로워 보였다. AI 시대의 개발자라니,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준비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다. 과거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의 자동화를 가져왔다면, 지금의 AI는 지적 노동의 자동화를 불러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만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지적 생산물이 기계에 의해 대량으로 생성되는 경험은 필연적으로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을 낳는다. 나는 이런 고민 속에서 연사로 나온 CTO 분들은 AI라는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프레드 브룩스의 "은탄환은 없다(No Silver Bullet)"라는 논문이 있다. 은탄환이 없다는 말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는.. 이종적 동종 (4월 근황) 올해 상반기 지원한 공채에서 모두 서탈했다. 코딩테스트도, 기술면접도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걸 알면서도 경험이라도 쌓아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지만 기업은 그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학교에서 하고 싶은 활동은 다 했던 나의 계획은 졸업을 앞두면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졸업 전에 우테코와 ADA에 지원했지만, 우테코는 프리코스의 벽을 넘지 못했고, ADA는 면접에서 탈락했다. 취업 전선은 서류 전형부터 쉽지 않았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글을 써오면서도 나를 소개하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그래도 서류 전형은 통과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코딩테스트에서 떨어지면 수긍할 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이종적 동종, 즉 다르게 보이려 했지만 본질.. 그런 스터디로 괜찮은가 대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나는 교내 전산 동아리 중 하나인 “슬기짜기”에 가입해서 활동했는데, 신입 부원들은 팀을 구성해서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해야 했다. 팀원들과 프로젝트 주제에 대해 얘기하면서 동아리 웹사이트 이야기가 나왔다. 명색이 전산 동아리인데 공식 웹사이트 하나 없는 게 말이 되냐고 말이다. 다른 전산 동아리는 자체 사이트로 리쿠르팅을 홍보하고 있던 터라 더 비교가 됐다. 우리도 만들어보자. 그렇게 동아리 홍보 웹사이트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팀원은 5명이었다. 나, 편입생 1명, 2학년 1명, 1학년 2명 … 모두 열정은 있었지만 나를 포함해 모두 웹개발 지식이 전무했다. 그나마 3학년인 내가 학교에서 들은 지식으로 이들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지만 어..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3월 근황) 3월이 되고 애플의 신학기 프로모션은 마감을 앞두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결국 큰 맘 먹고 맥북을 새로 샀다. 한번 눈에 아른거리니 살 명분이 안에서 넘쳐 흘렀다. 명분이 생겨서 사는 게 아닌, 사고싶다는 마음이 명분을 만들어 낸다. 애플은 정말 대단하다. 돈을 번다는 건 사람의 지갑을 여는 것이고 마음을 얻는 것인데 이걸 정말 잘한다. 스펙으로 호소하기보다 사람들을 자신들의 세계로 초대한다. 여기에 내가 배울 점이 있다. 기능적인 부분은 대체되기 쉽지만, 정체성은 고유하다. 고유한 것은 살아 남는다...군복학한 그해 10월, 학교에서 대여해주는 맥북이 2018년식에 배터리 관리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아 그냥 하나 산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최고로 잘한 결정이었다. 저걸로 학업과.. 내가 졸업이라니 (2월 근황) 다음 글을 준비하던 차에, 벌써 3월 초반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울에 올라온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너무 빨리 가고, 정작 하는 건 없는 것 같고… 하지만 이것 또한 과정이라는 것. 밍기적대는 모습도, 앉아서 무언가 하려고는 하지만 결국 해낸 게 없는 상황들 속에서 드는 생각들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하는 요즘이다. 2월 초에는 곤지암 스키장에 다녀왔다. 1년에 한 번꼴로 가다 보니, 갈 때마다 몸으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일치기로 가면 어느 정도 적응해서 이제 재밌어질 때쯤 집에 가야 해서 늘 아쉬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1박을 해서 많이 탔다. 타면서 중급 코스까지는 어떻게든 내려가지만 그 이상은 겁도 나고 실력도 제자리라는 것을 느꼈다. 한 번쯤 강습을 .. 말이 통하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1월 근황)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1월부터 다니던 교회의 청소년부 교사로 섬기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누가 누굴 가르친다는 것인지, 교사(敎師)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짓눌려 처음에 요청이 왔을 땐 고민이 많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믿음의 본이 될 수 있을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그래도 결국 하기로 마음먹은 건 교사는 아니어도 친구는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하지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자. 그런 형/오빠가 되어주자고 다짐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일본에서 단체 손님 27명이 우리나라에 3일간 여행오셨다. 아버지와 오래전부터 교류했던 분들인데, 가족행사를 맞이하여 대가족이 방문해주셨다. 인원이 인원인 만큼 아버지께서 나에게 동..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도 되지 못한 시기 (12월 근황) 오블완 챌린지가 끝난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글쓰기를 쉬었다. 매일 글을 쓰는 건 분명 좋은 경험이었지만, 일상 속에서 영감을 매일 얻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영양가 없는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가 됐던 적도 있었다. 나는 이런 방식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고, 다시 글을 쓰고 싶을 때 쓰기로 했다. 12월은 이벤트가 많았다. 시작은 나의 서울행이었다. 대학수업도 다 들었고 더 이상 포항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5년의 포항생활을 정리하고 본가인 서울로 왔다. 한때 지겹게 지냈던 포항이 이젠 졸업식과 캡스톤/디그리 축하 말곤 갈 일이 없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포항생활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문과였던 내가 원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수 있었던 곳, 다양한 사.. 오블완 챌린지를 마무리하며 오늘로 오블완 챌린지가 마무리되었다. 꾸준함이 부족했던 내가 21일 동안 매일 글을 쓰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평소에는 글감이 떠오를 때에만 글을 쓰곤 했기에, 매일 꾸준히 쓰는 것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이 챌린지를 완주하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완벽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날 떠오른 솔직한 생각으로 글을 시작하고 퇴고를 통해 다듬어가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전에는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몇 시간을 들여 끝까지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지만, 이번에는 일단 시작하고 다듬는다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접근했다. 이렇게 하니 글쓰기를 시작하는데 훨씬 부담이 덜했고, 그렇게 완성된 스무 편의 글들은 각각은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모아 보니 그 자체로 내 삶의 의미 있는 기록이었다.. 이전 1 2 3 4 다음